▲대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윤경원 교수(교육학 박사) © 유기농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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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은 누구나 싫어하는 감정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선, 나와 남과 비교에서 열등감을 느낍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키가 작다”. “나는 저 사람보다 덜 예쁘다”. “나는 저 친구보다 학벌이 부족하다”. “나는 동료보다 진급이 느리다”. “나는 친구인 너보다 수입이 적다” 등 등 열등감을 느끼게 만드는 종목은 수없이 많습니다. 남들과의 비교는 비단 나와 남의 비교 뿐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의 아내는 내 친구의 아내보다 덜 예쁘다". "우리 아들은 옆집 아들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 한다"라는 것도 열등감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또, 나의 부모님이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것도 열등감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열등감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요?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고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A. Adler)는 열등의식에 대한 이론을 피력한 바가 있습니다. 아들러의 열등감 이론을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워낙 무능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필연적으로 자신의 열등함을 경험하게 됩니다.(인간은 태어난 이후 1년은 되어야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이 느립니다)
똑같은 임신주기를 가진 소, 기린, 하마 등의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곧 잘 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나 말 등을 제품으로 얘기하면 완성제품이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태어나자마자 걷고, 며칠 뒤 뛰어다니는 인간은 한 명도 없습니다.
미완성으로 태어나는 인간은 항상 자기에게 부족한 것을 타인에게 찾게 되는 겁니다. 결혼 상대를 만나도 나한테 없는 것을 가진 상대에게 더 호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성장 발전해 나가는 동물이니까요. 따라서 열등의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경험하고 소유하게 되는 특징인 것입니다.
아들러에 의하면, 열등의식은 인간에게 학습의 동기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서는데 일 년이라는 세월이 걸릴 뿐만 아니라 걸음마를 배우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만 합니다. 이 실패에서 아기는 자연적으로 “나는 부족하다”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런 도전, 실패, 재도전, 재 실패, 재재도전의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이른바 도전 정신과 개척정신을 가지게 되고 성취의 기쁨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요즘 경험하는 열등의식은 아들러가 말한 그런 원초적인 열등의식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 동생은.... 내 친구는... 내 선배는... 등등 바로 옆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서 느끼는 열등감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즉, 현대 사회의 열등의식은 주로 남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상대적인 열등의식입니다. 물론 아들러가 지적했듯 이 상대적인 열등의식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더 노력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열등감이 이렇게 바른 기능만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등감은 분명히 고통스럽거나, 경험하기 싫은 감정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거동을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나를 열등감 느끼게 만드는 상대방이 있을 때 나의 행동은 불편하고, 나는 나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원활하게 움직여져야 속이 시원할 텐데, 나의 머리와 몸과 입은 더 굳어지며 식은땀을 줄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놈의 열등감이 나를 더 이상 구속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남과 비교하는 버릇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직관적인 반응을 길러야 합니다. 즉, 더 잘해야겠다는 잡념을 버리고 타인의 눈치를 보는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직관적인 반응을 자주 연습해야 합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바로 얘기 할 수 있는 자세와 태도가 직관적 사고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나와 남을 비교하는 버릇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스타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잡념이 자기를 꽉 지배하게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잡념과 버릇에 의해서 스스로 올가미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례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지네 다리가 몇 개가 되는 지 아십니까? 다리가 두 개인 우리 인간보다 훨씬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네가 이 많은 다리를 가지고도 헤엄을 잘 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념(無念)의 경지에서 헤엄에만 몰입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헤엄이 잘 될까? 이 많은 다리 중 첫째다리, 둘째다리.... 25번째, 26번째 다리, 마지막 다리는 어떻게 움직였지?“라는 생각이 들어, 수영을 잘해보려고 힘이 잔뜩 들어가고 그 쪽만 신경을 바짝 쓴다면 아마도 헤엄이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다 결국은 제 풀에 지쳐 물에 빠져 버릴 겁니다. 즉, 잡념이 들어 간 것이지요. 제가 공부하는 상담학에서는 탈숙고(脫熟考)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깊이 생각하면 잡념에 빠져 하는 상담이나 평소 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고 그르친다는 것입니다.
축구선수가 골을 멋지게 넣어서 자기가 스타가 되겠다는 잡념이 들어가면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골을 제대로 넣을 수 있겠습니까? 골프선수가 더 잘해 보겠다고, 더 멀리 내 보내겠다고 잔뜩 힘을 주고 공을 치면 공이 제대로 맞겠습니까? 경험하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타인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말도록 하십시다. “내 일을 있는 그대로 소신껏 잘하자. ” 잘 나갈 때는 겸손하고 없을 때는 당당하자“ 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현대 사회를 사는 하나의 지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윤경원교수( 대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윤경원교수는 다양한 교직활동(경운대학교 아동사회복지학부 연구교수, 계명대학교 교육학과 외래교수,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겸임교수 등)을 거쳐 2006년부터 현재 충북 제천시 대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경력으로는 노동부 산하 직업능력개발원 교육과정위원(비상근), 영남대학교 대학원 전문상담교사양성 교수, 경북 구미시 알콜상담센터 자문위원, 한국진로상담학회 회장, 한국상담학회 운영위원, 명락노인복지관 운영위원장, 제천 장애인 복지관 운영위원, 제천지원교육청 일반징계위원(외부), 제천 보호관찰소 치료명령집행위원, 충청북도 사회복지분야 평가위원 등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기업체. 법무부 연수원, 공무원교육원, 복지기관 등에 인성강의 및 전문상담 수퍼비전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사, 전문상담사(한국상담학회), 평생교육사, 정교사(일반사회), MBTI, 스트롱 전문강사 자격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지역사회의 교육 및 복지향상을 위하여 봉사 및 연구,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편집 정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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